1980년대 말 이래 북한 주민들 사이에 남한 대중가요와 디스코 음악이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최근 들어서는 불법으로 만들어진 남한 드라마와 영화 CD, 또는 비디오 테이프 등이 드물지 않게 유통되고 있습니다. 불법 CD 단속을 “반사회주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막기 위한 소탕전”이라 하여 중앙당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위반자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하고 있는데도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남한 드라마와 영화를 담은 불법 CD, 비디오 테이프 등이 주민들 사이에 유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불법 도강으로 중국을 오가는 장사꾼들에게서 각종 CD를 구입하여 몰래 보며 어른들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들도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여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을 모방하고 흉내 내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편, 북한은 1980년대 말부터 경제적 어려움과 외교적 고립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대서방관계 개선과 부분적인 개방을 모색해 왔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과 1995년 ‘평화를 위한 국제 체육 및 문화축전’ 등의 행사 유치를 통해 대외이미지 개선과 체제개방 의지 부각에 주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서방 관계개선 및 체제개방 과정에서 침투한 서구 사조 및 문물의 영향,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및 세계적인 자유화 추세 등으로 북한 주민들 사이에 사상적 동요가 일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점차 확산시킨 것은 199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온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난입니다.
1995년 북한이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요청함에 따라 대북식량지원과 관련한 남한 및 국제기구 관계자들의 방북이 잦아졌으며 이로 인해 북한 주민들은 서구 사조·문물과의 접촉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한편 경제난 이래 북한 주민들이 남한과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는 특히 중국에서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친척의 도움을 받기 위해, 또는 밀거래를 하기 위해 중국을 오간 북한 주민들은 입소문을 통해서나, 남한 텔레비전 방송 시청, 잡지 구독 등을 통해서 남한과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남한에서 돈벌이를 하고 온 조선족들을 통해서는 방송이나 잡지들에서 본 남한 문화, 자본주의 문화가 ‘선전’을 위해 만들어진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도 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남한과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보다 더 새롭게 하고 서구 사조·문물의 유입을 가속화한 계기로 꼽을 수 있는 것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입니다. 공동선언 이래 남북한 간 인적교류의 규모가 확대되고 빈도가 많아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남한과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1980년대 말 이래 국경지역으로부터 불어온 이른바 자본주의 ‘황색바람’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으며, 특히 북한 청소년들의 사상적 이완과 가치관 변화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청소년들 사이에 ‘자유주의’ 경향과 사상적 해이 및 혁명성 약화, 집단적 조직생활을 벗어난 행위 등이 확산되어 가고 있음을 우려하여 조직적 통제와 사상투쟁을 강화하고 있으며, “청소년들 속에 밖으로부터 반동적이고 퇴폐적인 부르주아 도덕과 생활풍조가 침습하지 못하도록 모기장”을 든든히 칠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외부사조 및 문물의 침투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우려한 북한 당국이 1990년대 말 내놓은 이른바 ‘모기장론’입니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 초반에도 ‘모기장 전략’이 등장한 바 있습니다. 구소련 해체 및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와 때를 같이 하여 등장한 ‘모기장 전략’은 자본주의 풍조가 침투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 사회주의를 고수하고자 한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에 비해 1990년대 말에 나온 ‘모기장론’은 체제를 부분적으로 개방해 나가는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이 외부사조·문물과 접촉하면서 겪을 수 있는 문화적 충격을 완화하고 혁명성·이념성 약화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예방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